파텍필립의 발전
이런 창업기를 거쳐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생산의 중심을 손목시계로 이동하여, 이후 기술은 더욱더 닦여져 완성도는 높아만 갔다. 1930년대에 등장한 96타입은 이 시대의 파텍필립 기술의 집대성이다.
스위스에서도 희귀한 수작 manufacture로서의 존재를 계속해 지금까지 개발해온 정밀시계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뭐라고 해도 파텍필립을 브랜드로써 말하고 있는 것은 미의 감성 밖에 없다.
1846년에 처음으로 독립분침, 2년 후에는 자동태엽을 개발. 그리고 1851년에는 파텍필립사로 개칭하고 새로운 역사 새기기를 시작한다. 같은 해에 개최되었던 런던 세계 대 박람회에서는 금메달을 수상한 시계를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왕자가 최초로 파텍 시계를 소유한 사람으로 기록되어있다. 동시에 많은 왕후귀족인 피오9세를 비롯한 여러 명의 로마교황과 러시아의 니콜라스 2세, 차이코프스키, 리하르트 바그너, 록펠러, 아인슈타인 등이 파텍필립의 고객 명단에 올랐다.
지나칠 정도로 심플한 파텍필립의 시계는 기술을 위압적으로 고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이얼의 문자, 바늘의 움직임 등 모든 것에 인간 본래의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 자세야 말로 시계를 예술까지 승화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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